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콘텐츠 범람 시대의 그레샴의 법칙

콘텐츠 시장은 형편없는 정보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이 사실인 양 유통되고, 가치 없는 대량 생산 쓰레기들이 모든 피드를 뒤덮고 있죠. 원작자의 노력은 헛되이 도용되어 원본보다 더 멀리 퍼져나가고, 분노와 자극적인 어그로가 사람들의 주의력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실정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깊이 있는 콘텐츠의 시대는 끝났다"며 한탄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좋은 콘텐츠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저 나쁜 콘텐츠라는 산더미 아래 묻혀서 안 보일 뿐입니다. ‘묻힌 것’과 ‘사라진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이 차이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 오래된 경제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는 원리입니다.

나쁜 콘텐츠가 승리하는 이유

화폐의 가치가 그 안에 담긴 금속에서 나오던 시절, 위조범들은 멀쩡한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내 은을 챙기고, 그 자리에 값싼 구리를 섞어 같은 액면가의 새 동전을 찍어내곤 했습니다. 가짜 동전도 진짜와 똑같이 통용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동전은 금고에 쌓아두고 가짜만 썼죠. 결국 시장은 구리 섞인 싸구려 동전으로 가득 찼습니다. 16세기 토마스 그레샴(Thomas Gresham)은 이를 관찰하고 핵심적인 통찰을 내놓았는데, 바로 “악화(bad money)는 만들기 쉽다” 는 사실입니다. 은은 빼고 저렴한 금속을 섞기만 하면 되니까요.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를 가르는 기준은 길이에 있지 않습니다. “비용을 지불했는가” 에 있습니다. 진지한 사유에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검증의 과정이 따릅니다. 반면 나쁜 콘텐츠는 그 비용을 생략하고 결과물만 취합니다. 그럴듯한 거짓말을 써 내려가거나, AI로 대량 생산하거나, 남의 결과물을 복사해 붙이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 등 형태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속임수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알맹이는 파내고 액면가만 유지하는 것이죠.

숏폼(short-form)은 이런 속임수에 최적화된 무대입니다. 나쁜 콘텐츠가 숏폼을 만나면 생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떨어집니다. 남의 영상을 가져와 한 줄 자막을 다는 것은 가짜 기사를 통째로 쓰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힙니다. 누군가의 다큐멘터리를 30초짜리 클립으로 잘라내는 것은 표절보다 쉽죠. 여기에 AI까지 더해지면 비용은 거의 0에 수렴합니다. 똑같은 위조 동전인데 이제는 무한 복제까지 가능한 셈입니다. 동전 깎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시장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싸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싸구려 가짜들이 시장을 장악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합니다. 바로 “구매자가 사기 전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어야 한다” 는 점입니다.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가 중고차 시장을 분석한 ‘레몬 시장(Market for Lemons)’ 이론이 바로 이것이죠. 구매 전에 좋은 차와 고물차를 구분할 수 없다면, 시장은 결국 고물차로 가득 차게 됩니다.

콘텐츠 시장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제목과 썸네일만 봐서는 내용이 깊은지 얕은지 알 수 없거든요. 직접 클릭해서 소비해 봐야만 알 수 있죠. 게다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한 화면에 머무는 평균 시간은 2004년 2분 30초에서 2023년에는 7초로 줄어들었습니다. 7초 만에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가려낼까요? 못 가려냅니다. 그래서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는 똑같은 비용, 즉 ‘스와이프 한 번’이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됩니다. 클릭베이트(Clickbait)는 어텐션 이코노미(attention economy)판 동전 깎기입니다. 기대감만 잔뜩 부풀리고 속은 텅 비워버리는 것이죠.

사실 콘텐츠 시장은 중고차 시장보다 더 나쁩니다. 중고차(레몬)는 결국 고장이 나거나 엔진이 덜덜거리는 등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얕은 콘텐츠는 어떨까요? 읽고 나면 무언가 배운 것 같은 느낌 이 듭니다. 그 느낌이 진짜인지 착각인지는 다른 자료들과 교차 검증을 해보기 전까지는 명확해지지 않죠. 그런데 얕은 콘텐츠는 이미 충분히 알았다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사람들은 교차 검증 같은 귀찮은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본능까지 더해집니다. 새로운 자극을 쫓는 것은 인간의 진화적 특성입니다. 짧고 강렬한 이야기에 끌리는 건 구전 전통 때부터 우리 몸에 새겨진 본능이죠. 플랫폼은 도파민 보상 루프를 통해 이런 충동을 증폭시킵니다. 무한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비용은 저렴하고, 7초 이내에는 구별조차 불가능하며, 생물학적 본능까지 파고드니 나쁜 콘텐츠가 이기지 않을 도리가 없는 셈입니다.

좋은 콘텐츠는 정말 쓸모없어질까요? 금(Gold)의 사례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결론은 참 암울하겠죠. 시간과 고민, 검증이라는 비용을 들여 만든 콘텐츠는 시장에서 밀려나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화폐를 보면 답이 조금 달라집니다.

종이 화폐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커피를 마실 때도, 월세를 낼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어디에나 쓰이죠. 반면 금화는 찍어낼 수 없습니다. 직접 캐내고 정제해야 하니 희소할 수밖에요. 그래서 아무도 금화로 식료품을 사지는 않습니다. 흔한 종이 화폐가 세상의 모든 거래를 덮고 있는 동안, 귀한 금은 금고 속에 잠겨 있죠.

이제 가격 을 한번 보세요. 종이 화폐를 많이 찍어낼수록 돈의 가치는 얇아집니다. 인플레이션이죠. 하지만 금고 속에 잠들어 쓰이지 않는 금은 해가 갈수록 가격이 오릅니다. 종이 화폐를 가장 많이 찍어내는 중앙은행들조차 금 보유량을 계속 늘리고 있거든요.

종이는 마음껏 찍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휴지 조각이 아니다’라는 믿음 까지 찍어낼 수는 없습니다. 많이 찍어낼수록, 그 뒤를 받쳐줄 진짜 무언가가 절실해지죠. 흔한 것이 유통을 지배할수록, 희소한 것의 가치는 더 높아집니다. 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는 자리에서 물러나, 세상을 밑에서 받치는 자리 로 옮겨간 셈이죠.

좋은 콘텐츠도 이 금과 두 가지 면에서 닮았습니다. 첫째, 좋은 콘텐츠는 ‘원석’입니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저질 콘텐츠의 상당 부분은 사실 누군가 제대로 만든 것에서 추출했거나 베껴온 것이니까요. 둘째, ‘담보’입니다. 비용 없이 무한대로 콘텐츠를 쏟아낼 수 있는 시대에, 그 뒤에 진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오직 제값을 치르고 만든 결과물에서 나옵니다. 저질 콘텐츠가 시장을 덮칠수록, 좋은 콘텐츠는 더욱 귀해집니다.

시장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같은 1,000회의 조회수라도 제대로 만든 영상은 대량 생산된 ‘땜빵용’ 콘텐츠보다 광고 단가가 ~20~50배 정도 높게 책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 자본은 좋은 콘텐츠를 귀하고 값어치 있는 것으로 정확히 대우합니다. 좋은 콘텐츠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비싸질 뿐 이죠.

하지만 금화처럼, 좋은 콘텐츠도 가치를 얻는 대신 ‘유통’을 포기해야 합니다. 종이 화폐는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가치가 희석되죠. 금은 금고에 갇혀 있지만 귀합니다. 좋은 콘텐츠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 사이에서 비싸게 거래될 뿐, 대중에게 널리 퍼지지는 않습니다. 저질 콘텐츠는 가치를 잃는 대신 유동성을 얻었고, 좋은 콘텐츠는 도달 범위를 잃는 대신 가치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손에 쥐고 계신가요?

유동성과 가치 —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요?

두 갈래 길은 스펙트럼의 양 끝에 놓여 있습니다. 둘 다 타당한 길이죠.

한쪽 끝: 유동성 팔기. 이 시대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겁니다. 대중이 무엇에 주목할지 파악하고, 빠르고 저렴하게 콘텐츠를 찍어내는 방식이죠. 깊이는 선택사항일 뿐입니다. 내용이 무엇이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만 하면 도달 범위와 속도는 따라오니까요. 숏폼(Short-form)이 대표적인 수단인데, 이 형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충분히 통하는 전략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죠. 함정은 이겁니다. 유동성만 팔다 보면, 누군가 더 싸게 파는 순간 당신은 즉시 대체됩니다. 덜 깎인 동전은 더 많이 깎인 동전에 밀려나기 마련이거든요.

다른 쪽 끝: 금 캐기. 시간, 고민, 검증이라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진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보상은 대중적인 도달이 아니라 희소성에서 옵니다. 좁지만 충성도 높은 독자층,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시장 말이죠. 물론 트레이드 오프(trade-off)는 확실합니다. 금은 금고 속에 머물고, 도달은 느리며, 독자층은 작습니다. 때로는 외로울 수도 있죠. 좋은 결과물에 대한 시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규모는 작고 그 작은 규모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만이 선택지는 아닙니다. 당신이 서 있는 지점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일 겁니다. 도달 범위를 얼마나 쫓을지, 깊이를 얼마나 포기할지를 저울질하면서 말이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표류하게 될 겁니다. 자신이 동전을 깎아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죠.

당신은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서기로 했나요?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그 자리에 서기로 ‘선택’했나요, 아니면 그냥 떠밀려온 건가요?